일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잉어인간 2021. 12. 2. 20:33

아무래도 부수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년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했었다면 이제는 내가 잘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재능은 왠지 거저 얻은 것만 같아서 내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것들만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의 재능들. 올 한 해는 나의 재능을 정말 수익화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기간으로 삼으려고 한다. 깊게 파보지 않아서 그저 잠재력의 단계에서 멈추었던 재능들을 물 위로 끌어올려 세상에 드러내고, 좀 더 냉정한 평가를 받아 보고 싶다.

 

 

그래서 정말 성장 과정 내내 가까운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 이게 유의미한 수준의 재능인지를 확인해 볼 것이다. 한 번은 그런 시간이 있어야 나도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간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노력도 운도 모두 조금쯤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이쯤이면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노력해 보았다. 오래 전 재수를 마치고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더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 그때 멈춰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 이번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일단은 멈출 것이다. 멈추고, 대신 잘하는 것으로 내가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 보련다.

 

 

후보는 다음과 같다.

이전과 동일하게, 강사 - 내 시간이 너무 없고, 돈을 많이 벌어도 정서적 피로가 심해서 다시는 하지 않고 싶음. 탑급 재능인 건 나도 알고 이미 검증도 되었지만.. 이제는 뒤져도 더는 못하겠다. 한다면 논술 첨삭 정도나 하고싶다. 주어진 문항과 제시문 안에서 피드백을 끝내는 수준으로만 일하고 싶다는 게 간절한 바람이다. 성격상 열심인 학생을 보면 그렇게 못할 것을 또 아니까.. 그래서 강사는 하기 싫다.

 

 

웹소설 작가 - 예전에 출판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시일이 꽤 지났다. 키보드랑 머리만 있으면 되지만 중작기적인 플랜을 짜려면 이론을 좀 배워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잘 할 것 같긴 한데 잘 팔릴지는 모르겠다. 비엘이 잘 팔리는 것 같은데 비엘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심하게 들어서 보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다.  호모포비아는 아니고 실제로 사람이 어떤 성별을 사랑하건 별로 개의치 않는데 그냥 그 농밀한 19금 묘사가 '텍스트로 쓰인 것'을 보면 유독 속이 불편하달까. 어쩌면 비엘의 문제가 아니라 19금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고민은 좀 된다. 수입은 제일 나을 것 같은데 규칙적인 연재를 해야된다면 부담감이 클 것이다. 

 

 

그림 - 일러레라고 하나. 그쪽. 하고 싶은 건 산업디자인 쪽인데 이미 관뒀던 미술을 다시 시작해서 대학까지 한번 더 진학하는 건 이 나이에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금손이 많은 바닥이기도 하고. 지금도 툴을 배운 적 없어 다루지 못할 뿐이지 그림만 그리라면 현업 작가에 준할 수준으로까진 그려낼 수 있긴 한데.. 역시 그냥 좀 한숨이 나온다. 다들 잘 한다고 했었지만 나는 이 일을 사랑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미술을 그만두며 했던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림 그리는 게 즐겁지 않고, 더이상 그리고 싶은 게 없다는 생각. 내 손으로 담고 싶은 피사체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한 가지 미련이 있다면 빛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것 정도.. 정말 이건 취미로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어떡하지. 정말 하고 싶은 게 없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인생이라지만 좋아하는 것만 쫓다가 패가망신하게 생겨서 잘하는 걸 좀 해 보려 그랬더니 죄다 하기가 싫네. 일단은 차선책으로 최근 흥미가 생긴 3d max와 마야를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리거로 일하던 친구가 이 프로그램들을 썼던 것 같은데... 분명 남 일인데 어쩌다 보니 내 일이 되었다. 독학으로는 어렵다던데 일단 한번 맛이라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