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에게

마음에 남아서 주워둔 사진.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이 가까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지만 내가 받은 교육은 장보다는 단이 많았던 것 같기도.
나는 늘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절망만이 기다릴 것이란 경고를 들었다.
나의 실패는 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패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늘 도전하기 전 경고가 우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할 거라면 내 전부를 거기에 던질 것을 요구받았고
전부를 던지지 않은 날에는 비난을 받았으며
전부를 던졌음에도 실패한 날엔 인격적 모독을 감수해야만 했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는 법을, 최선을 다하는 법을, 신중하게(그러나 성격상 과감해진..ㅋㅋ)선택하는 법을 배웠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은 자주 말했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나와 머리를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웃어 넘겼지만 나는 속으로 울었다. 난 네가 나처럼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속으로 읊조렸다.
학부모님들은 본인 자식이 내 절반만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도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삭혔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이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게 제일이에요. 그러면 나머지 얻고 싶은 것들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요. 라고 생각했다.
저 글을 보고 문득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생각이 났다. 만화영화를 볼 때 나는 늘 주인공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최근 좆우라는 멸칭으로 불리우는 포켓몬스터의 지우, 디지몬의 태일이, 이누야샤 같은 그런 캐릭터들 말이다. 그 무모함과 산만함, 나대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적극성이 그들을 빠르게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고 마냥 그 의욕적인 모습이 밉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내 마음이 왜 변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불현듯 디지몬2에서 태일이를 상징하는 문장이 '용기의 문장'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싫어하던 만화영화 주인공들의 성격. 각기 다른 인물이니 다른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소년들을 위한 만화의 주인공 성격은 용기라는 범주로 묶어낼 수 있었다. 그 경솔함, 일단 덤비고 깨지고 보는 성향, 속이 투명하게 보이다 못해 가끔은 이 개노답 X끼가 왜 이럴까 하는 마음마저 들게 만드는 그런 행동들. 그것들은 어쩌면 전부 용기였다. 덤벼보고 다치더라도 배우면 된다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자기 확신이 마음 속 깊은 곳에 깔려 있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그게 때로는 민폐가 되고 누군가의 짜증을 유발할지라도 그 자신은 행복하리라. 나는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내게 용기가 부족해서 나와 너무 다른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싫어하기까지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